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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장미의 이름 리뷰

by Sieat 2024. 2. 15.

중세 신학의 가치

장미의 이름

 

이 글은 물론 수기다.
위의 말은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인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의 첫 장에 있는 말 입니다. 장미의 이름은 수련사 아들 소와 그의 스승인 윌리엄이 한 수도원에 머무는 동안에 일어난 연쇄살인 사건에 대해서 다루는 영화지만, 이 영화는 보통의 추리소설과는 약간 다른 면모를 지니는데요? 어디 한 번 함께 살펴볼까요?
먼저, 윌리엄과 아들 소가 수도원에 들어오자,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반깁니다.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윌리엄은 꽤 유명한 수도사였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처음에 나오는 검은 옷을 입은 꽤 높은 위치에 있는 듯 보이는 두 명의 수도사 중 한 명이 윌리엄에게 어떤 것을 상담해 보자고 하지만, 기각된다. 거절한 사람이 범인이 아닐지 하는 생각도 든다. (추리는 나중에 하도록 하자)
그들은, 일전의 사람을 통해 그들이 이 수도원에 도착하기 전, 하나의 죽음이 발생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죽음은 일반적인 사고라고 하기에는 이상한 죽음이었다. 그는 만신창이로 바위에 내던져진 채, 탑 아래에서 발견되었는데 탑의 창문은 열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고 한다. 이 이상한 죽음을 해결해 달라고 부탁하게 되는 것으로 영화는 막이 오르게 된다.
윌리엄은 처음에 자살이라고 생각하며 수사를 진행하였으며, 반대편 탑에 올라가서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진 게 아니냐는 1차 추리를 한다. (사실 이게 답이지만 처음 접할 당시에는 바보라고 생각했다...이게 전부가 아니지만)
다음날. 아침 집회 당시에 한창 집회의 진행 중에 사람들이 뭔가를 호소했고, 그들이 향하는 장소로 가 보니, 커다란 항아리 안에 머리부터 박힌 채로, 그리스어 번역가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전문가가 죽어있었다. 윌리엄은 이 사건은 타살임을 확신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종말이 찾아온다며 혼란스러워했고, 윌리엄과 한 수도사는 시체를 검안하고, 밖으로 나와, 죽은 자의 흔적을 발견하고 쫒던 중, 한 건물에까지 간다. 그리고 웃음에 부정적인 이상한 노인을 만나 쫒겨난다.
밤중, 다시 들어가 단서를 발견하지만, 한눈팔던 사이 책 페이지 중에 둔 돋보기를 도난당하고, 사건과 관련 없는 일 하나가 생긴다(왜 넣은 거지)
그날 밤. 윌리엄은 아들 소의 고해성사를 들어준다.
그리고 다음날. 프란체스코의 사절단이 온 가운데 세 번째 살인이 발생한다. 윌리엄의 돋보기를 가진 채로...
윌리엄은 추리했다.
남색가였던 세 번째 피해자는 첫 번째 피해자와 관계를 맺었고, 그는 괴로워하던 중, 두 번째 피해자를 만나, 그에게 세 번째 피해자에게서 받은 금서의 힌트를 전해주었고, 괴로워하던 중 첫 번째 피해자는 자살. 그리고 두 번째 피해자가 금서의 내용을 찾던 중 사망했다. 세 번째 피해자는 자신이 의심을 받을까 두려워 돼지우리 속에 넣었으며, 번역한 것을 읽은 세 번째 피해자는 목욕을 하다가 익사했다. 이 모든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에 관한 책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니, 문서고를 열람할 수 있게 해달라.
하지만, 그의 추리는 윌리엄의 숙적...?(아마 그런 것이 이다음 날에 온다고 하자 그의 말을 깔끔히 무시했다.
하지만 우리의 윌리엄 수사는 서재의 비밀통로를 알아내고, 그쪽에서 길을 잃을 뻔하지만 제자 아들 소와 함께 탈출하게 되고, 오랜 숙적이던 상대를 만난다. 그는 종교재판을 담당하는 사람으로, 윌리엄을 항상 벼르고 있었던 것! 그는 무고한 듯 무고하지 않은 곱사등이와 아들 소와 몸을 섞은 여성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심문한다. 재판 중, 윌리엄은 그들이 이교도 인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 수도원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에 대해서는 그들이 아니라, 자신의 추리가 옳다. 아르키메데스의 희극에 관한 책이 문제다. 라고 하지만,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고, 다음날 하나의 사건이 도 일어나자, 이번에는 윌리엄이 범인으로 지목되고, 윌리엄과 아들 소는 금서 고로 재빨리 도망친다. 그 자리에서 그들을 기다린 것은 호르헤 수사. 그는 이 수도 안에서 일어난 살인극의 범인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서학 2편을 지키는 자이다.
여기서 이제까지의 피해자들이 죽은 이유가 나온다. 바로 그 책에 독이 묻어있었던 것! 그래서 이제까지 그 책을 찾았던 사람들은 그 독에 죽은 것이었다. 화형은 진행되었고, 윌리엄과 나드소 역시 호르헤가 지른 불에 갇히게 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서학 제2편은 불에 타 없어지게 된다.
그리고 밖에서는 수도 민들이 이단 심문자들을 벌하고 죽였다. 이것이 중세 신학의 큰 분기점이 된 것으로 생각한 것이 아닐까.


이 작품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희극은 상관없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희극이라서 그렇다. 이 말은 아리스토텔레스. 즉, 최고의 학자가 쓴 희극이기에, 중세의 신들은 어떤 그 무엇보다도 값진 것이기에 그들을 제외하고 기쁨이 있을 수 없다. 라는 것으로 해석되며, 마지막에 나오는 수도 국민들의 반역은 이제 중세 사회는 끝물이며, 서서히 몰락해 가는 중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서학 제2편은 현재에 전해지지 않는다. 어쩌면, 작중의 호르헤 수사 같은 인물이 소멸시킨 것이 아닐까... 해학은 악마의 술수이자, 이 시대를 끝내버릴 것으로.
중세 신학의 가치. 즉, 신들이 거룩함을 아니, 장미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

'문서 사자실 이 추워 손이 곱다. 나는 이제 이 원고를 남기지만, 누구를 위해서 남기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무엇을 쓰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여담이지만 필자는 장미의 이름이라는 책을 중학생 때 처음 접했고, 집에 수 권의 책이 있어 내용은 이미 아는 상태였지만, 영화를 보면서 감회가 새로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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